비 오는 오후의 키보드 소리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창문 쪽으로는 큰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작게 들이치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립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키보드 소리와 빗소리가 같은 자리에서 겹칩니다.

기계식 키보드를 쓰는데, 스위치 종류가 그렇게 시끄러운 쪽은 아닙니다. 갈축에 가까운 느낌이라, 누를 때마다 또각이 아니라 조금 무딘 톡 소리가 납니다. 평소에는 그 소리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빗소리가 깔려 있어서, 그 위에 키보드 소리가 한 단씩 얹히는 게 들립니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일 때의 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갖습니다. 한 줄을 쓰는 동안 톡톡톡톡 같은 간격으로 들리다가, 줄 끝에서 한 박자 쉽니다. 그 한 박자 동안 빗소리만 들립니다. 다음 문장을 시작하면 키보드 소리가 다시 빗소리 위로 올라옵니다.

쉴 때의 침묵이 평소보다 두텁게 느껴집니다.

평소 책상에서는 그 침묵의 자리에 환풍기나 노트북 팬 소리 정도가 깔려 있습니다. 오늘은 빗소리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빗소리는 환풍기 소리보다 결이 거칠어서, 같은 침묵인데 더 분명한 침묵으로 들립니다.

한 시간쯤 글을 쓰다가 잠시 손을 멈췄습니다.

키보드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빗소리가 한 단계 또렷해졌습니다. 처음 한참은 빗소리만 들렸는데, 곧 그 안에 다른 작은 소리들이 같이 들렸습니다. 창문 어딘가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톡 소리, 멀리서 들리는 차 소리, 위층의 발소리. 키보드 소리가 사라지자 비어 있던 자리에 그 소리들이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침묵이 진공이 아니라는 걸 한 번 더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소리가 빠진 자리에는 평소 안 들리던 소리들이 들어옵니다. 청각은 빈자리를 채우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습니다. 작은 톡 소리가 빗소리 위로 다시 올라옵니다. 한 줄의 끝에서 한 박자 쉬면 빗소리만 다시 듣고, 다음 줄을 시작하면 두 소리가 겹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