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개를 쓰고 무엇을 알게 됐나
스팀잇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첫 글에 세 갈래를 약속한 게 50 개 전입니다.
첫째 실패 회고, 둘째 데이터 인사이트, 셋째 사고의 정리. 세 갈래를 다 한 두 번씩은 다루겠다고 적었고, 페이스는 욕심내지 않고 주 1 회 정도로 시작하겠다고 적었습니다. 그 약속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50 개째 글에서 한 번 펴봅니다.
페이스의 약속은 깨졌습니다.
주 1 회로 시작한다고 적어두고 매일 한두 편씩 쓰는 페이스로 흘러갔습니다. 50 편을 쓰는 데 한 달이 걸리지 않았고, 그 한 달 동안 portfolio 운영을 같이 진행하면서 글이 부산물처럼 따라 나왔습니다. 처음 페이스가 깨진 이유를 사후에 짚어보면, 글이 portfolio 운영의 사고를 정리하는 도구로 쓰이기 시작해서 그렇습니다. 사고를 정리하는 게 운영의 한 작업이라면, 그 작업이 매일 진행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세 갈래의 비율은 또렷하지 않게 섞였습니다. 실패 회고로 잡았던 글이 12 편쯤, 데이터 인사이트가 10 편쯤, 사고의 정리가 8 편쯤. 나머지 20 편 정도는 세 갈래 안에 정확히 안 들어가는 글들입니다. 만년필 6 년, 책장의 위 칸, 출근 지하철의 노약자석. 일상 관찰을 portfolio 운영과 겹쳐 본 글들이고, 인트로의 약속에 없던 갈래입니다.
이 네 번째 갈래가 따로 자라난 게 50 편의 한 발견입니다. 세 갈래의 약속을 적었을 때 그 세 종류가 전부일 거라고 가정했는데, 실제로 굴려보니 portfolio 운영이 매일 일상과 겹치고 그 겹침을 적는 자리가 별도로 생겼습니다. 일상이 portfolio 의 한 면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도구로 작동했습니다.
50 편을 쓰는 동안 글의 voice 가 굳어 가는 게 글마다 보였습니다.
처음 몇 편은 voice 를 안 정하고 썼습니다. 5 편째쯤부터 합니다/입니다체가 자연스럽게 굳었고, 단정조 슬로건과 격언-반박 어법이 손에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15 편째쯤부터 같은 어휘에 의존하는 패턴이 보였고, 한 어휘가 글마다 따라 나오는 게 또렷해졌습니다. 30 편쯤부터 그 어휘에 의존하지 않고 같은 사고를 다른 표현으로 받아내는 연습이 글마다 들어갔습니다.
이 굳음이 자산인지 함정인지가 또렷하지 않습니다.
voice 가 굳으면 글이 일관되어 읽기 쉽고, 시리즈 안에서 글끼리 같은 모양으로 만납니다. 동시에 voice 가 굳으면 그 voice 가 다룰 수 없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시야에서 빠집니다. 가벼운 농담, 단정한 결론, 격앙된 감정이 voice 안에 안 들어와서, 그 안쪽의 사고가 글로 정리되지 못한 채 흘러갑니다. 50 편 시리즈 안에서 정리된 사고와 정리되지 못한 사고의 비율이 어떤지를 정확히 측정할 수는 없는데, 후자가 적지 않다는 감각이 있습니다.
portfolio 운영에 50 편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한 번 펴봅니다.
직접적인 결정 변경은 두세 건입니다. 슬롯 ID 발급을 다음 주에 박기로 한 게 049 작성 과정에서 굳었고, 책상 더미를 옆으로 안 옮기기로 한 작은 결정이 048 에서 나왔습니다. 큰 결정 (pSEO 동결, SEO v2 시작, 컨버전 머신 lift) 은 글을 쓰기 전에 이미 진행된 결정이라 글이 그 결정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간접적인 영향은 있었습니다. 매일 한두 편씩 쓰는 동안 portfolio 의 사고가 한 번 더 정리되었고, 그 정리가 다음 주의 작업에 잠재적으로 입력되었습니다. 정리의 효과가 portfolio 의 다음 분기 결정에 어떻게 찍힐지는 6 개월 뒤에 보일 부분입니다. 인트로에서 약속한 "6 개월 뒤 다시 읽기" 가 그때 한 번 더 들어가야 합니다.
50 편 중 어떤 글이 6 개월 뒤에 가장 무겁게 들어올지가 지금 시점에서는 안 보입니다. 지금 가장 무거워 보이는 건 029 의 AdSense 슬롯 0 개와 040 의 가설 검증 누락이고, 두 글이 무거워 보이는 건 가까운 시점의 사건이어서입니다. 6 개월 뒤에 다시 펴보면 027 의 분포나 036 의 회의 0 개 같은 글이 더 무게를 받을 수도 있고, 일상 관찰 글이 사후에 의외의 무게로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다음 50 편이 어떤 갈래로 펼쳐질지는 지금 시점에서는 또렷하지 않습니다. 인트로의 세 갈래 + 일상 관찰의 네 갈래가 그대로 이어질 수도 있고, 어느 갈래가 더 무거워지거나 새 갈래가 자랄 수도 있습니다. portfolio 의 다음 분기 결정 — 슬롯 ID 발급, 다섯 종 컴포넌트, AI referrer 15% 의 검증 — 이 어떻게 찍히느냐에 따라 글의 결이 같이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페이스는, 매일 한두 편이 나온 게 첫 50 편이었고 다음 50 편에도 유지될지는 안 정해두려고 합니다. 정해두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그것을 또 글에 적어야 합니다. 그 순환을 한 번 피해두는 게 50 편째에 정리해두는 한 가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