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역설』 - 스티븐 파인먼

in #kr-book • 4 days ago

image.png

비난은 문제의 시작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나와 다르거나 약한 사람을 비난한다.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높이려는 심리도 있을 것이고, 비난을 통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유발함으로써 상대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비난은 모욕과 명예, 체면과 같은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비난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마녀사냥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난은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결된다. 무분별한 비난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비난 문화가 과도해지면 사회는 경직되고 사람들은 실수를 두려워하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게 되고, 결국 공동체는 서로를 감시하고 희생양을 찾는 분위기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비난 자체를 없애는 것이 좋은 해결책일까?

오히려 비난이 전혀 없다면 도덕적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고, 법과 제도 역시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다. 누군가 규칙을 어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행위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비난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지키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업이나 정부의 비윤리적·불법적인 활동, 노동 착취, 환경 파괴, 제품의 결함, 거짓된 약속 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이나 공무원, 정부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다. 세금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공개하고, 자신들의 결정과 행동이 왜 타당한지를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국민은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비판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비난의 유무가 아니라 어떤 비난인가일 것이다. 개인의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한 비난과, 잘못된 행동에 책임을 묻기 위한 비난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사람을 공격하지만 후자는 행동을 문제 삼는다. 전자는 상대를 침묵시키려 하지만 후자는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시키려 한다.

물론 비난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정당한 이유로 비난을 받았고, 자신이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사과와 행동의 변화일 것이다. 비난은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에 불과하다.

결국 비난이라는 것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사람을 깎아내리기 위한 비난은 사회를 망가뜨릴 수 있지만, 잘못된 행동에 책임을 묻는 비난은 오히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난을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비난하고 왜 비난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Sort: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