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16 푸틴의 쿠릴열도 방문과 러일간 관련 내용, 정태현 글steemCreated with Sketch.

2026년 8월 13일, 러시아 연방 국가안보회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쿠릴 열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단호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메드베데프는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쿠릴 열도가 '역사적으로 일본에 속한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러한 수사는 어떤 사실도 바꿀 수 없다. 이 섬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러시아 영토에 속할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그들의 망상에 대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크렘린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실무 방문을 위해 남쿠릴 열도, 즉 일본이 북방영토라고 부르는 지역에 도착했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의 남쿠릴 열도 방문은 집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크렘린이 공개한 일정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투루프 섬, 일본이 에토로후 섬이라고 부르는 곳의 수산물 가공 공장을 시찰하고 현지에서 생산된 캐비어를 시식했다. 이후 섬에 있는 병원과 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하루 전인 8월 12일에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대규모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13년 만에 처음으로 사할린 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참관 기간 동안 러시아와 일본 간의 영토 분쟁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남쿠릴 열도를 포함한 섬들의 주권이 국제 문서에서 확인되었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확립된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러시아가 과거 일본과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해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입장이 바뀐 것 같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변화는 러시아의 소행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8월 13일 푸틴의 이투루프 섬 방문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히며, 이 섬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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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열도 분쟁의 뿌리는 18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는 원래 아이누, 니브흐인, 윌타인 등 여러 선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18세기에 러시아인과 일본인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양국의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1711년, 일본 에도 막부는 쿠릴 열도 남부 4개 섬, 즉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군도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며 이 지역에 관리들을 파견했다. 일본은 이 섬들을 에조치, 즉 홋카이도의 연장으로 간주했다.

러시아 역시 1713년부터 캄차카반도에서 남하하여 쿠릴 열도 북부에 진출했다. 1738년, 러시아 탐험가 이반 예브레이노프는 쿠릴 열도 전역을 조사하고 러시아 영토로 선포했다. 이로 인해 러일 양국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1754년, 일본은 쿠릴 열도 남부 4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1845년, 일본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다. 쿠릴 열도 전체를 일본의 영토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1754년의 남부의 4개 섬 주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1855년 2월 7일, 일본과 러시아는 시모다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러일 양국 간의 통상과 국경을 규정한 것으로 쿠릴 열도의 분할을 명시했다. 조약에 따라 이투루프 섬 이남의 남쿠릴 열도는 일본 영토로, 우루프 섬 이북의 북쿠릴 열도는 러시아 영토로 정해졌다. 사할린 섬은 양국의 공동 관리 지역으로 남았다.

시모다 조약은 러일 양국이 쿠릴 열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첫 번째 사례였다. 일본은 이 조약을 통해 남쿠릴 열도 4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1875년 5월 7일, 러일 양국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사할린 섬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우루프 섬 이북의 쿠릴 열도 전체를 러시아로부터 할양받아 쿠릴 열도 전역을 영토로 삼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쿠릴 열도 56개 섬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은 러일 양국의 국경을 명확히 획정한 중요한 조약이었다. 일본은 사할린에서의 러시아와의 파워 게임에서 부담을 느껴 이 조약을 받아들였다.

쿠릴 열도 전체가 일본 영토가 된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는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다. 1875년부터 1945년까지 약 70년간 일본은 쿠릴 열도 전역을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행정력을 행사했다.

1904년 2월 8일, 러일 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으로 러일 전쟁이 종료되었고, 일본은 사할린 섬의 북위 50도 이남 지역을 러시아로부터 양도받았다.

포츠머스 조약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폐기하고 새로운 국경을 설정했다. 일본은 사할린 남부를 획득함으로써 오호츠크해와 일본해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했다.

1905년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은 쿠릴 열도 전역과 사할린 남부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했다. 1905년부터 1945년까지 40년간, 일본은 이 지역에 1만 7천 명의 주민을 이주시키고 어업, 광업, 농업 등을 발전시켰다.

1930년대, 일본 제국은 만주국을 건국하고 중국 대륙으로 침략을 확대했다. 쿠릴 열도는 일본 제국의 북방 방어선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일본은 이투루프 섬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태평양 전쟁에 대비했다.

1941년 4월 13일, 일본과 소련은 일소 중립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양국이 상호 불가침을 약속하고, 일방이 제3국과 전쟁 상태에 들어갈 경우 중립을 유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이 조약으로 소련의 공격을 우려하지 않고 태평양 전쟁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얄타 회담이 개최되었다. 미국, 영국, 소련 3개국 정상은 독일의 무조건 항복과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이 회담에서 소련은 독일 항복 후 3개월 이내에 대일본전에 참전하는 대신,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 전체를 소련에 할양한다는 비밀 협정을 체결했다.
얄타 협정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동아시아의 영토 구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서였다. 소련은 이 협정을 근거로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중국은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카이로 선언을 계승하여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및 시코쿠와 부근 작은 섬들에만 미치며,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는 제외된다고 밝혔다.

포츠담 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의 영토 범위를 명확히 규정한 국제법적 문서였다. 일본은 이 선언을 받아들여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8월 9일, 만주와 사할린, 쿠릴 열도로 진격했다.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소련군은 약 2만 3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쿠릴 열도 전역을 장악했다.
소련군은 약 8만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며 요새를 구축하고 있던 쿠릴 열도를 공격했다. 가장 치열한 전투는 열도 북쪽 끝에 위치한 슈무슈 섬에서 벌어졌으며, 다른 지역에서는 저항이 미미했다. 결국 소련군은 1,567명의 사상자를 내고 약 6만 명의 일본군을 포로로 잡았으며, 쿠릴 열도 전체를 장악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은 전함 미주리 호에서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고, 일본은 쿠릴 열도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다.
1945년부터 1951년까지 6년간, 소련은 쿠릴 열도 전역을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행정력을 행사했다. 소련은 일본인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러시아인들을 이주시켰다.

1951년 9월 8일, 일본은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했으나 소련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의 영토 범위를 최종적으로 규정한 국제법적 문서였다. 일본은 이 조약으로 쿠릴 열도 전역에 대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그러나 일본은 1956년 10월 19일, 소련과 일소 공동 선언을 체결했다. 이 선언에서 양국은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해 협상을 계속하고, 영토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이 선언을 통해 남쿠릴 열도 4개 섬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일소 공동 선언은 러일 양국이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해 협상을 계속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영토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아 양측의 협상은 오랫동안 교착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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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쿠릴 열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55년 시모다 조약과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해 일본이 쿠릴 열도 전역에 대한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 조약들이 유효하며, 쿠릴 열도는 역사적으로 일본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둘째, 일본은 남쿠릴 열도 4개 섬이 쿠릴 열도의 일부가 아니며, 홋카이도의 부속 섬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시코탄 섬과 하보마이 군도는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셋째, 일본은 포츠담 선언이 일본의 주권을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부속 섬들로 한정했다고 해석한다. 일본은 남쿠릴 열도 4개 섬이 홋카이도의 부속 섬이므로 포츠담 선언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넷째,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항복 당시, 소련군이 쿠릴 열도 전역을 점령했지만, 남쿠릴 열도 4개 섬은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일본의 영토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이 섬들에 1만 7천 명의 일본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일본 정부가 행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지만, 이는 소련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소련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쿠릴 열도는 여전히 일본 영토이며, 소련의 점령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여섯째, 일본은 일소 공동 선언에서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계속하기로 합의했으므로, 남쿠릴 열도 4개 섬의 반환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이 선언이 러일 양국 간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기초 문서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첫째, 얄타 협정과 포츠담 선언에 따라 쿠릴 열도 전체가 소련에 할양되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 협정들이 국제법적 효력을 가지며, 쿠릴 열도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결과로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둘째,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이 쿠릴 열도 전체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 조약이 국제법적 효력을 가지며,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셋째, 1945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소련군이 쿠릴 열도 전역을 점령하여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 기간 동안 소련군이 일본군을 격파하고 쿠릴 열도 전역을 장악했으며, 이는 국제법상 영토 획득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한다.

넷째, 1956년 일소 공동 선언은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계속한다는 내용일 뿐, 영토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 선언이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기초 문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섯째, 남쿠릴 열도 4개 섬이 쿠릴 열도의 일부이며, 홋카이도의 부속 섬이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이 섬들이 쿠릴 열도에 속하며,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의 영토였다고 주장한다.

여섯째, 1945년 이후 80년간 러시아가 쿠릴 열도 전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이 기간 동안 러시아인들을 이주시키고 행정력을 행사했으며, 이는 국제법상 영토 주권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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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열도 분쟁은 역사적으로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 영토 문제를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질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 보고자 한다. 러시아는 얄타 협정과 포츠담 선언에 따라 쿠릴 열도가 합법적으로 소련에 귀속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국제법의 명확한 판단이다.
일본은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며 남쿠릴 열도 4개 섬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주장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다.

러시아와 일본의 쿠릴 열도 분쟁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양국의 경쟁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고착된 결과다. 1855년 시모다 조약과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일본이 쿠릴 열도 전역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지만, 1945년 얄타 협정과 포츠담 선언,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소련이 쿠릴 열도 전체를 합법적으로 획득했다.

쿠릴 열도 분쟁의 해결은 러일 양국 간의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한 핵심 과제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2024년 3월 21일, 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의 비우호적인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과의 평화 조약 협상을 거부하고, 일본 국민의 남쿠릴 열도 무비자 입국을 취소하며, 해당 섬에서의 경제 협력 관련 교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의 남쿠릴 열도 방문과 메드베데프의 경고 메시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질서를 수호하겠다는 러시아의 의지이자, 일본의 신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경고다.

그에 반해 다카이치의 쿠릴 열도 영유권 주장은 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라기보다 헌법 개정을 위한 명분 쌓기다.

쿠릴 열도 분쟁은 일본 우익 세력에게 정치적 자산이다. 일본 우익은 쿠릴 열도 영유권 문제를 통해 민족주의 감정을 고취하고, 헌법 개정을 위한 지지 기반을 확보한다. 이는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국 건국과 중일 전쟁을 통해 국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것과 유사한 패턴이다.

내일이면 81주년 광복절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일본의 신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해야 한다. 쿠릴 열도 분쟁은 단지 영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질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시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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