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백과 대신 불안이 여무는 가을

in #atomy • 6 hours ago

오곡백과 대신 불안이 여무는 가을


요즘 농촌 들녘에는 오곡백과보다 더 풍성하게 들어찬 것이 있다. 마치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째깍거리는 듯한 서슬 퍼런 불안감이다. 정부가 칼을 빼 들고 추진하겠다는 ‘농지 전수조사’는 지금 시골 땅을 딛고 사는 이들에게 핵폭탄을 넘어서는 파괴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순수하게 돈을 벌겠다고 시골 농지에 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땅을 사는 이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당장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이도 있고, 평생을 치열하게 살다 퇴임 후 전원생활을 꿈꾸며 미리 은퇴를 준비하는 이도 있다. 물론 내려와 살 요량으로 땅을 샀다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파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의 서슬 퍼런 법과 정책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마치 멧돼지 몰이하듯 당장 농사를 짓지 않으면 모두 투기꾼’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칼날을 휘두른다. 농지는 오직 농사만을 지어야 한다는 신성불가침의 명제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독한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농지에서는 오직 농사만 지어야 한다며 개인의 손발을 묶는 그 엄격한 논리는, 왜 거대한 콘크리트 앞에서는 물벼락 맞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가.

지금 우리가 보는 번듯한 도로와 웅장한 공장, 거대한 물류창고와 수천 세대의 아파트 단지들 역시 과거에는 대부분 푸르른 농지였다. 그것도 농사짓기에 가장 좋다는 일등품 우량 농지들이었다. 나라를 먹여 살릴 국가전략산업이라며 반도체 단지로 지정해 개발하겠다는 드넓은 부지 또한 하늘에 떠 있는 땅이 아니다. 결국 농민들이 대대로 일구어온 농지다.

거대 자본과 국가의 이름으로 농지를 갈아엎어 공장을 짓는 것은 ‘개발’이고, 개인이 은퇴 후를 도모하며 사둔 작은 땅은 ‘투기’로 몰아 제재하겠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이치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동네 골목에서 농사지은 야채 좀 파는 건 불법이라며 단속하는 꼴 과 무엇이 다른가.

이 기막힌 현실 속에서 최근 들려온 뉴스는 농민들의 가슴을 더 서늘하게 만든다. 정부의 서슬 퍼런 칼날에 겁을 먹고 7,500만 원에 산 땅을 단돈 100만 원에 눈물을 머금고 처분했다는 기막힌 소식 이 들려왔다. 남부럽지 않은 힘을 가졌고 높은 자리에 있다는 사람마저 매년 수천만 원씩 쏟아질 이행강제금과 세금 폭탄이 두려워 자식 같은 땅을 헐값에 내던지며 도망쳤다.

하물며 대대로 흙을 파먹고 살아온 백 없고 힘없는 농민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오죽하겠는가. 그들이 평생을 일구어온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범죄의 온상으로 몰리는 정국에서, 닥쳐올 파멸을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정의로운 의도가 담긴 정책이라 할지라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인위적으로 급격하게 뒤틀어버릴 때 반드시 거대한 충격이 발생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몰아붙이는 정책치고 부작용이 없었던 적이 없다. 진정으로 투기를 막고 농민을 보호하려는 선의가 있었다면, 전수조사의 칼을 휘두르기 전에 최소한 현업에 종사하는 농민들과 합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해 미래를 준비하던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촘촘한 안전망부터 깔아두었어야 했다.

냇가에 가서 큰 물고기만 잡아내겠다며 촘촘한 그물로 냇바닥을 샅샅이 훑어버리거나, 아예 물줄기를 막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큰 물고기만 잡히고 작은 물고기들은 무사할 리 없다. 그 물속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던 작은 물고기들이 가장 먼저 말라 죽는다.

지금의 전수조사는 마치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통째로 태워버리는 미련한 짓이며, 말로는 투기를 잡겠다며 외치지만 정작 이 숨 막히는 그물질을 통해 정부가 진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물줄기를 어디로 돌려 누구의 배를 채우려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사 자체를 원천 거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꼭 해야만 하는 국가적 대업이라면 하라. 다만, 인위적인 정책 강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농민들의 부작용과 재산적·정신적 피해는 국가가 온전히 책임지고 보상해야 마땅하다. 스치기만 해도 범죄로 몰리는 흉흉한 세상이라는데, 평생 땅만 바라보고 살아온 농민들의 심신을 이토록 무참하게 망가뜨려 놓은 것은 '농심(農心)'을 처참하게 유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농심을 안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피해를 복구시키는 것을 농지 전수조사에 앞서 시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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