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0-7 민족주의자 박정희를 위한 변명, 그는 국가주의자가 아니다.

in #korea • 29 days ago

박정희를 민족주의의 계보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한 혼란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이글을 다시 작성해서 올린다.

박정희를 민족주의의 계보에 포함시키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크게 보아 첫번째, 그가 만주군으로 일본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 두번째 집권이후 독재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박정희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국가주의자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필자가 박정희를 소환한 것은 영남과 호남의 화해와 단결을 위해서다. 아마도 남북의 화해를 위해서는 박정희와 김일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고, 영호남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서는 박정희와 김대중에게서 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필자가 박정희를 소환한 것은 남북의 화해 그리고 남북의 화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영호남의 화해를 위해서다.

영호남의 화해를 위해서는 호남이 박정희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고, 이를 위해서 박정희의 민족주의적 성격에 주목한 것이다.

박정희가 만주군 출신으로 일본육사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그가 친일파 출신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가 젊었을 때 친일파의 길을 걸었다고 해서 평생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젊을 때에 친일파였다가도 나중에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정희를 평가함에 있어서 젊을때의 경로를 그의 삶을 관통하는 오직 하나의 평가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는 권력을 잡고나서 국가건설에 나섰고 성공했다. 그리고 그런 국가건설의 과정이 민족부흥이라는 역사적 과제라고 스스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자로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서 남북이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마도 박정희를 민족주의자로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의견의 대부분은 그가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민주인사를 죽음으로 이끌어내고 사법살인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점에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독재자라는 것과 민족주의자가 아닐라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자로 알고 있는 김구도 해방이후 중요한 인물을 암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몽양 여운형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다. 독재자라고 해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는 법은 없다. 이승만은 명백한 독재를 저질렀다. 그러나 그를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자라고 규정한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를 민족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가 대통령 재임기간중 이룬 국가발전의 성과 때문이고, 그가 이룬 국가발전은 당시 한국민족의 절대적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를 국가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민족주의의 반열에 놓을 수 없다는 족보도 없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국가와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지식 그리고 공부의 부족때문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개념을 모두 뭉뚱그려 섞어 버리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정희가 국가발전과정에 국가의 역할을 강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국가주의라고 하는 것은 개념적 혼란의 결과이다. 박정희에게 있어서 국가란 국가지상주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박정희에게 국가란 파시즘의 국가보다는 스탈린의 국가와 더 유사하다.

스탈린의 독재를 파시즘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국가주의라고 하지도 않는다. 박정희의 국가운영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히틀러식이라기 보다는 스탈린식에 더 가깝다.

제2차 대전이후 서구는 히틀러와 스탈린을 묶어서 전체주의라고 규정했다. 독재적인 권력행사는 비슷하고 국가동원의 방식도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서구가 전체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것은 스탈린의 사회주의체제를 비난하기 위해서다. 나찌의 히틀러와 스탈린을 동일한 개념으로 뒤섞어버리기 위한 지극히 비과학적인 접근 방식이다.

히틀러의 파시즘(나찌즘)이 계급에서 탈락할 위기에 봉착한 대중의 동원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스탈린의 독재는 임박한 세계대전에 대비한 일국사회주의라는 비상한 국가운영의 방식이었다.

박정희의 국가운영은 탈락위기에 놓인 대중의 동원을 바탕으로 한 공포와 테러를 이용한 국가운영이라기 보다는, 스탈린식 국가운영과 훨씬 비슷하다.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은 파시즘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을 추구했으나, 스탈린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내내 전쟁을 국가정책으로 수립하여 추진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주장하면서도 국가자원을 경제발전에 집중투자했다. 국방비보다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더 많은 자원할당을 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진보정권이 국방비를 증액하고 조선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필자는 최근 문재인과 이재명 등 한국의 진보정권이 박정희보다 훨씬 더 파시즘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근혜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박정희도 파시스트가 아니다. 박정희를 파시즘적 국가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악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박정희가 일본의 군국주의적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정부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군국주의는 파시즘적 국가주의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본은 계급 탈락위기에 몰린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의 국가주의가 아니었다. 같은 국가주의라고 해도 그것은 엄청난 차이다. 그래서 일본제국주의를 군국주의라고 해도 파시즘적 국가주의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이런 평가에 반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반론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그런 반론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주장은 반론의 여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최근 문재인 정권과 이재명 정권의 기반이라고 하는 소위 개딸들이 동원되는 것은 파시즘적 현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유시민과 김어준 같은 자를 파시즘의 괴벨스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박정희 당시에 대중을 동원하기위한 선동선전가가 있었던가? 박정희 당시에는 탈락할 계급조차 없었다. 그러니 대중 동원도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라고 해서 모두 뭉뚱그려서 국가주의로 몰고가는 것은 지적 게으름에 불과하다.

박정희의 국가운영 방식이 스탈린과 유사한 것을 그가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박정희는 스탈린의 국가발전계획을 상당히 세밀하게 잘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박정희의 강력한 국가권력은 그 이후 자본에 대한 국가의 견제라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두환부터 김대중까지 이어지는 기간 국가권력은 자본을 압도했다. 그 기간동안 한국이 급격한 빈부격차에 쏠리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국가권력이 약해지는 것은 오히려 노무현부터였다. 자세한 지표는 모르겠으나 그때부터 빈부격차는 격심해졌고, 자본이 국가권력은 우습게 보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같은 나라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에 대한 일정한 억제능력은 필수적이다. 만일 그것이 국가주의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국가주의로의 길을 걷겠다. 나는 자본과 노동의 공동체를 꿈꾼다. 그런 공동체는 국가의 힘이 일정하게 유지될때 비로소 안정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를 배신자라고 비난한다. 박정희는 살아남기 위해서 남로당 동지의 명단을 넘겼다. 그가 명단을 넘겨서 살아남았으니 배신자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가 대통령이 되어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민족주의자의 반열에 자리매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남로당에서 나오면서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넘어 버렸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쉽지 않는 것은 그가 모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워낙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당시 그가 살아온 역사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형 박상희는 ㅐ구 10.1 사건 당시 공산주의자로 처형되었다.

박정희의 아버지는 동학의 접주였다. 그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라고 할 때, 아마도 상당부분은 그런 탄생과 가족의 배경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박정희를 너무 단선적으로 쉽게 보지 말라. 그는 당신들이 평가하는 모든 면을 다 가지고 있는 인간인지 모른다. 당신이 박정희의 어떤 면을 보고 주목하는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박정희를 민족주의자의 반열에 위치시키는 것은 과거의 그의 행적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그를 민족주의자의 반열에 놓는 것은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살며,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인 것이다. 물론 그는 그런 고민을 하게 하는 모든 다양한 면을 다가지고 있다.

박정희라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인간을 총체적으로 평가해서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정희는 우리가 지금 그리고 미래에 필요한 민족주의의 출발점에 필요한 바로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그의 잘못은 반면교사에 해당하는 문제일 것이다.

역사를 보는 눈을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간기 20년의 시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전문역사가에게도 쉽지 않다. 국가주의 파시즘, 나찌즘, 민족자결주의, 제국주의, 자유주의 등등에 대한 개념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대충 줏어 들은 것으로 꿰맞춰서 떠들어 댈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