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늙었구나. 12.

in #krsuccess17 days ago (edited)

유튜브 썸네일에 X-Japan이 떴다. 아마 며칠 전에 80~90년대 메탈 밴드들 영상 몇 개를 봤기 때문일 거다. 나는 예전부터 X-Japan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겨왔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무의식적으로 쇼츠를 넘기듯 동영상을 클릭했다. 그렇게 유튜브 알고리즘의 꼭두각시가 되어 멍하니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어렸을 때 틈만 나면 친구들과 뮤직 비디오를 틀어주는 술집에 갔었다. 신청곡을 받는 곳이라 우리가 좋아하던 스래시 데쓰 메탈 계열의 음악을 신나게 신청했다. 오비츄어리, 네이팜 데스, 모비드 앤젤, 카르카스 등이 큰 화면에 등장하면 함께 발을 구르고 헤드뱅잉을 했다.

간혹 우리는 ‘절대’ 신청하지 않는 X-Japan이 나왔다. 아마도 이 곡을 신청했을 저쪽 테이블에서는 환호성이 터졌고, 우리는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대체 저런 음악을 왜 좋아하는 걸까. 메탈은 무겁고 어둡고 과격하고 진지해야 한다. 저런 건 메탈이 아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더 훌륭하며 진정성이 있다. 저들의 음악은 얄팍하고 상업적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얼마든지 손가락 하나로 X-Japan을 닫아 버리고 다른 음악을 클릭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영상을 다 보고 X-Japan의 다른 곡을 클릭한다. 이번에는 라이브 공연 영상이다.

지금은 살아있지 않는 멤버들이 저기에 있다. 배도 나오고 주름진 얼굴을 지닌 멤버들이 지금 저기에서는 날렵하고 팽팽하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뜨거운 활기로 가득 찬 생명력이 무대 위에 넘친다.

음악마저 멋지다. 쥐어짜는 것 같았던 보컬도, 억지로 서정적인 감성을 조립해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인공적인 멜로디 라인도, 지금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영상 속의 풋풋한 멤버들을 보면서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 그런가. 가슴 한편이 살짝 아리기까지 한다.

공연 영상을 다 본 뒤 고개를 들었다. 모니터 뒤 책장과 책상에 어지럽게 쌓인 책들과 마무리해야 할 작업 자료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빨리 이 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자마자 가슴이, 아니 머리가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연달아 뜨는 X-Japan 썸네일도 주저 없이 닫았다.

역시. 인간은 호르몬에 지배되는 '물체'야. 갱년기가 제대로 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