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우산의 습격
‘거대거미의 습격’이라는 영화 제목은 곱씹을수록 매력적이다. 쉽고 직관적이다. ‘아라크네의 비밀’ 같은 제목은 뭐랄까, 너무 세련되고 아름답다. B급 괴수 영화라면 역시, 제목부터 거칠어야 한다.
거대거미가 알고 보니 주인공 소녀가 소중히 기르던 작은 반려 거미였으며, 거대거미와 소녀 간의 우정이 묘사되는 서사 같은 것은 없는 편이 더 좋다. 그냥 화끈하게 습격하고 퇴치하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이야기에 더 끌린다.
오늘처럼 시원하게 비가 내리는 도심의 길거리가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우산들로 뒤덮여 있다. 그 무리 속에서 파라솔처럼 거대한 우산 몇 개가 눈에 띈다. 평범한 크기의 우산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고 각도가 기울어지며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그 거대우산들은 무슨 자연의 법칙이라도 되는 듯 하나같이, 주변 우산들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아무런 변화 없이 똑바로, 다른 작은 우산들을 밀어내며 지나간다. 아마도 우산이 크고 무거워서 그 각도를 기울이기가 힘에 부치는 모양이다.
그 시커먼 거대우산들이 거대한 거미처럼 보인다. 영화 속 괴수처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본능에만 충실한, ‘습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B급 영화 속의 괴생명체.
Sort: Trending
[-]
successgr.with (75) 19 days a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