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흉몽, 어제 비로소 씻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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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흉몽, 어제 비로소 씻어내다

지난달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꿈을 하나 꾸었다. 쓰나미처럼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가는 검은 흙탕물 속에서 나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꿈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휩쓸려 가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마치 현실 같았다. 깨고 나서도 아주 불길한 예감이 가시질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로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물론 원인은 그전부터 내재되어 있었겠지만, 표면으로 돌출되기 시작한 건 딱 그때부터였다. 가장 큰 문제는 임대료가 제때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임대료 한 번 밀리지 않고 잘 내던 상가에서는 느닷없이 나가겠다는 통보가 왔다. 요즘 임대차법이 임대인보다 임차인 보호 위주로 바뀌다 보니, 내보내는 건 어려워도 나가겠다고 할 때는 보증금을 바로 내어주어야 한다. 이럴 때 건물주가 취할 수 있는 방어권은 별로 없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도, 혹은 쌍방이 별도 의사 표시 없이 묵시적으로 갱신되어 연장되었어도, 임차인은 언제든 "나 나가겠다" 할 수 있지만 건물주는 마음에 안 든다고 "너 나가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빈 가게가 늘어가는 추세에는 나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솔직한 건물주의 심정일 것이다. 한 번 나가면 다음 임차인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룸 같은 주거용은 그나마 나아 보이는데, 요즘 상가나 사무실 상황은 참 녹록지 않다. 오죽하면 건물주가 입주한 가게들이 잘되라고 고사라도 지내주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나야 원래부터 늘 그런 마음으로 임해왔지만, 요즘처럼 흉흉한 경기에는 그것도 약발이 별로 없는 듯하다.

이야기가 서울 간다고 나섰다가 삼천포, 아니 청평호수로 가버린 것 같다. 지금 이 시간쯤이면 청평호의 윤슬이 정말 장관일 텐데, 오늘 너무 일찍 출근하느라 그걸 눈에 담지 못해 이야기가 샛길로 샜나 보다.

오늘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제 저녁, 낯선 길에 호기심으로 들어섰다가 그만 수렁에 빠져 허우적댔던 일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니라, 길이 있을 것 같아 들어섰고 설령 없더라도 밭고랑이라도 걸어가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꽉 막혀 있어 결국 되돌아 나오려다가, 그만 함정 같은 웅덩이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밭둑을 올라서려는데 물기를 잔뜩 먹은 비탈이라 발이 미끄러졌다. 하필 그 밑이 얇은 함석판으로 덮여 있던 곳이었는데, 그게 푹 내려앉으며 그대로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사방은 어두운데 수렁 같은 웅덩이에 빠져 "이게 뭐지?" 하고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그때 그 꿈... 지금 액땜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생명에 지장이 없었고, 무엇보다 주머니 속 휴대폰을 빠뜨리지 않았으니 정말 대행이었다. 하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웅덩이 물에 흠뻑 젖어버렸지만 말이다. 서둘러 인근 운동장으로 와서 수도를 틀어놓고 빨래하듯 옷과 몸을 닦아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는데도, 이상하게 화가 나거나 속상하기보다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아무래도 제대로 액땜을 했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나 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 이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도 공부에 푹 빠져 있으신지 전화도 안 되고 카톡도 받지 않아 조금 속상했던 것뿐이었다.

운동장에서 걷기 운동을 잘하다가, 문득 지루한 생각이 들어 "동네 한 바퀴 크게 돌아오자" 하고 나섰다가 그런 날벼락을 경험했다. 낮이었다면 그럴 리 없었을 텐데,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어둠 속에서 풀숲을 헤치며 다니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비록 몸은 고생했지만 액땜을 했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마치 똥통에라도 빠졌다 온 사람처럼 샤워를 정성스럽게 하고, 평소 자주 먹던 후라이드 대신 아주 매운 통닭을 주문했다.

이제는 올 때가 되었겠지 하며 이 국장을 기다렸다. 밤 9시가 넘어도 오지 않기에 어디쯤 오나 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더라. 조금 더 기다리다 속이 출출하기도 하고 허해서, 평소 잘 마시지 않던 소주까지 곁들여 부지런히 통닭을 먹고 있으니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국장 오면 시원하게 마시라고 냉동실에 맥주를 넣어놓았다고 권하니, 피곤한지 다 못 마신다며 사양한다. 나도 이미 술기운이 살짝 오른 상태라 더 권하지 않고, 대신 콜라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지친 기색이 역역한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든다.

어쨌든 어제는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지워지지 않던 흉몽의 기운을 제대로 액땜한 날인 것 같다.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이게 바로 액땜이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것, 그것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다.

나쁜 액운을 다 쏟아부었으니, 이제 앞으로는 좋은 일만 많이 생기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14일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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