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만에 드러난 한국·노르웨이 불법 입양 실태-“진상규명 이제 시작일 뿐”
“어릴 적 거울을 들여다보면 주변 누구와도 닮지 않은 제 모습에 깜짝 놀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인생이라는 책에서 가장 중요한 첫 페이지를 누군가 통째로 찢어내버린 것 같
은 느낌이었다.”
비그디스 에크하르츠(54)는 1972년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11개월 만에 노르웨이로 입양
됐다. 한국은 노르웨이로 입양된 이들의 최다 출신국이다. 1954년 이후 6700명이 넘는
아동이 보내졌다. 그동안 노르웨이 당국은 불법 입양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노르웨이 ‘해
외 입양 조사 위원회’는 70여년간의 한국인 해외 입양이 적법성과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
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비그디스는 정부 보고서의 구체적 내용을 짚으며 입양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직감하고 있었지만, 막상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보니 다행
스러운 마음과 함께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한국 입양기관의 서류를 검증 없이 수용했고, 1990년대 후반까지도 부모
있는 아동이 ‘기아(고아)’로 둔갑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입양 절정기였던 1980년대에
는 노르웨이의 한국 입양 알선기관 ‘베르덴스 바른’이 한국 입양기관 ‘홀트아동복지회’에
자금을 대는 대가로, 홀트에서 노르웨이로 한해에 170명이 넘는 아동을 보내기로 합의하는
일도 있었다.
스무살이 되던 해부터 베르덴스 바른을 통해 자신의 입양 정보를 확인하려 했던 비그디스
는 정보 제공 거절 답신만 반복해서 받아야 했다. 알선 기관들은 ‘친모의 자발적 포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홀트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접근을 통제했다. 2024년 비그디스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낯선 기분이 들면서도 마침내 내가 있어야 할 고국에 속해 있다는 소
속감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비그디스는 많은 입양인이 정체성 혼란에 따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국가나 전문기
관의 지원 없이 홀로 감당하며 과거의 상처가 다시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입양인들
이 진실을 밝혀 나가는 길을 혼자 걷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정서적 지원과 동행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입양인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친부모나 가족의 유전적·의
료적 정보를 알지 못하면 갑작스러운 질병이 발생했을 때 의료진조차 적절한 치료법을 판
단하기 어렵다. 이들의 나이를 고려할 때 수십년을 더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회복 조치가 더이상 지체돼서는 안 된다.
비그디스는 지난 7일 진실화해위를 찾아 해외입양인 단체들과 함께 불법 해외입양 사건을
추가로 접수했다. 지난 9일과 10일에는 국회에서 열린 ‘제5회 입양진실의 날 국제컨퍼런스’
에 패널로 참여해 양국 정부의 공식 사과와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본문 이미지: 경향신문.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