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 올라온 외침, 정치는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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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제임스 탈라리코의 연설을 읽으며 우리의 역사를 떠올렸다. 그는 “이 나라의 진짜 싸움은 좌우의 싸움이 아니라 위와 아래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서로를 미워하며 싸우는 동안,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은 무엇을 얻고 있는지 물었다. 미국 정치에 던진 질문이지만, 그 울림은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다.

1919년 3·1운동의 외침은 “대한독립만세”였다. 일제의 식민 지배에 맞서 민족의 독립과 자결을 요구한 만세였다. 나는 그 외침에서 억압받던 민중이 스스로 역사의 주체로 나선 모습도 읽는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온몸으로 밝혔다.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지배를 더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4·19혁명도 그러했다. 부정선거와 독재에 맞선 학생과 시민들은 권력자가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국가폭력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저항이 이어졌다. 1987년 6월항쟁에서는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겠다는 요구가 거리를 채웠고, 마침내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위에서 내려온 선언에 앞서 아래에서 밀어 올린 시민의 힘이 있었다. 민주주의의 전진을 권력자의 결단만으로 기억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서로 다른 시대와 조건에서 일어난 운동들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역사를 관통하는 물음은 분명하다. 누가 나라의 주인이며, 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지배받는 자리에 머물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그 물음을 세상에 던졌고, 우리 사회는 그 힘으로 바뀌어왔다.

탈라리코의 연설에서 떠오른 것도 바로 이 오래된 물음이었다. 그는 시민들의 시선을 서로를 향한 적대에서 권력과 부의 구조로 돌렸다. 생활이 어려워진 이유를 다른 지역 사람이나 다른 성별, 다른 신앙을 가진 이웃에게서 찾도록 만드는 정치는 누구에게 유리한가. 시민들이 옆 사람과 싸우느라 지쳐 있을 때,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한국 사회에도 위로부터의 강압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민의 비판을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고, 노동자의 요구를 불온하게 바라보며, 권력에 대한 복종을 안정으로 포장하는 태도다. 특히 보수를 자처하면서 이러한 권위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무겁게 돌아봐야 한다. 보수라는 이름이 국민 위에 군림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시민의 저항으로 얻은 자유를 누리면서 오늘의 시민에게는 침묵을 요구한다면 모순이다. 과거의 민주화는 기념하면서 현재의 집회와 비판은 불편해한다면, 민주주의를 박제된 역사로만 받아들이는 셈이다. 국민은 선거 때 표를 던지고 물러나는 존재가 아니다. 권력이 잘못할 때 따지고, 정책이 삶을 위협할 때 바꾸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아래에서 올라온 모든 분노가 저절로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분노가 더 약한 사람에게 향하거나 다른 시민의 존엄을 짓밟는 순간, 지배의 논리를 되풀이할 수 있다. 민중의 힘은 누구를 굴복시켰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넓혔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탈라리코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주민에게도 봉사하겠다고 약속한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부당한 권력에는 단호하게 맞서되, 다른 선택을 한 시민까지 적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권력의 책임을 묻는 일과 이웃을 증오하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정치가 그 구분을 잃으면 국민의 분노는 또 다른 권력의 도구가 된다.

불교의 눈으로 보아도 권력과 재물은 사람 위에 설 자격이 될 수 없다. 자비는 고통받는 사람 곁에 서는 실천이어야 한다. 약자에게는 인내를 요구하면서 강자의 횡포에는 침묵하는 종교라면, 누구의 고통을 덜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3·1운동의 만세, 4·19의 함성, 광주의 저항, 6월항쟁의 외침은 오늘의 정치에 여전히 묻고 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을 권력은 실제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민중이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았어도, 권력이 다시 국민 위에 올라서려는 순간은 되풀이된다.

이 질문은 권력을 평가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내걸었던 공약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그 정책이 민중의 삶을 얼마나 바꾸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잘못은 엄정하게 비판하되, 약속을 지키는 노력과 성과까지 외면해서는 공정한 평가가 될 수 없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려는 현 대통령의 행보마저 진영의 적개심으로 물어뜯고, 성과를 살피기에 앞서 흠집부터 찾는 우리의 자화상은 서글프다. 권력을 감시하는 눈은 날카로워야 하지만, 그 눈이 증오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아래에서 올라온 민중의 요구가 정책으로 실현되는지를 살피고, 부족한 실천은 더 나아가도록 요구해야 한다.

일부 위정자들에게도 경고한다. 민중의 요구를 발판 삼아 권력을 얻고도 자신의 입지와 다음 선거만 계산하는 자기 정치에 매몰되지 말라. 국민의 인내를 진영에 대한 충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삶을 외면하고 약속을 저버린 정치에 대한 분노는 앞으로 좌우를 가리지 않을 것이다. 민중은 어느 정당의 소유도, 어느 정치인의 권력을 위한 도구도 아니다.